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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때 신열 때문에 며칠 끙끙 앓고 있는데
신기에 의한 열이라.. 약같은거 소용이 없어서..
알고 지내는 무당 아주머니가 저 데리고
경상도 어느 지방에 훌쩍 데리고 가셨거든요.
아주머니가 잘 알고 지내시는 스님의 절에서 며칠 묵고
가기로 하고 지내던 셋째 날이었어요.
누군가 절 부르는 소리가 나서 아픈 와중에도 눈을 떴어요.
저절로 눈이 뜨이더군요.
문을 스으윽 하고 밀어내고 나오니까....
아직은 해 뜰려면 먼 어스름한 새벽이었어요.
파란 달빛이 절 마당에 아주 스산하게 펼쳐져 있는데
먼 발치에 아이의 혼령이 서 있어요.
옷은 걸치지 않았고...
알몸인데 연령은 두 세살 정도의 아이....
아이가 걷든 것도 아니고 스르륵 하고 오더니 제 손을
잡고서는 어디론가 데려가더라구요.
아이의 혼령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데
옆방에 스님이랑 무당 아주머니가 얘기를 나누고
계시는게 보이는데.....
아줌마... 아줌마... 하고 불러도 안들리시는건지 못듣는 건지
반응이 없더군요.
-아줌마.. 이 아이가 따라오라는데 따라가도 되요?
하고 계속 묻는데 방안에서는 대답이 없어요.
어쩌지... 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이 혼령은 자꾸 손을 잡아끌어요.
그냥 가보자... 싶어서 맨발로 따라 나서는데...
아이 뒤를 보니까 꼬리가 보여요.
절 문을 열고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에
가지마........ 가지마........ 누가 그래요.
그 순간 고개를 들어서 앞을 보니 낭떠러지에요.
절에서 수백미터 걸어서 오면 계곡이 있거든요.
그 계곡 옆으로 한참 더 가다보면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는데 그 절벽 끝에 제가 서 있더군요.
흠칫... 하고 놀라서 발걸음을 돌렸는데....
날 이끌던 아이의 혼령(여우 혼령) 뒤로
형체도 희미한 동물 혼령들이 수십마리 떼를 지어서 절 노려봐요.
그 때부터 죽자살자 뛰기 시작했어요.
발바닥에서 피가 나고 하는데도 신경 안쓰고
막 뛰다 보니... 절 근처까지 왔어요.
절에 가려면 계단이 많아서 좀 쉬었다 가려고
큰 나무의 기둥 뒤에 숨어서 쉬고 있는데...
어디서.... 응애... 응애....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요.
아주 절박한 도움을 원하는 그런 아기의 목소리...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멍하게 따라서 갔는데
다시 아까 그 낭떠러지로 와 있더군요.
아까와는 달리 동물 혼령들은 안 보이고 애기 우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서 내려다 보니까....
젊은 남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게 보였어요.
남녀의 주위로 하얀 안개가 두 사람을 싸고 있었는데...
그 하얀 안개 속을 보니 애기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게
보였어요.
남녀의 주변에 아까 제 뒤에 있던 동물 혼령들이 모여 있구요.
애기 혼령은 그렇게 떨면서도 두 사람을 보호하려고
울어대더군요.
두 사람의 애기구나...
엄마 아빠 보호하려고 그러는 구나...
신열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기운이 없어서
속으로 부르짖었어요.
차라리 날 잡아가라고..
두 사람은 놔두고 날 잡아가라고...
동물혼령들이 일제히 위에 있던 절 노려보더군요.
하나둘씩 스스슥 하고 올라와서 제 주위를 둘러 싸는데...
멀직히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호통을 치면서 세분이 뛰어오시더군요.
무당 아주머니랑 스님이랑 또 다른 스님분...
동물 혼령들이 그 일갈에 놀라서 다 흩어지고..
아주머니가 저 부축해주실때 아래를 보라고 손짓을 하고나서
잠들었다는...
삼일내리 잠만 자다가 4일째 되는 날 어디 아팠냐는 듯이
멀쩡하게 일어났다는....
나중에 집에 오는 길에 아주머니가 얘기를 해주셨어요.
부부 몇시간만 더 늦었으면 저체온증으로 죽었을 거래요.
제가 발견한 그 날이 그 부부 애기가 죽은지 일주년 되는 날
이었대요.
부부가 아이를 잃고 나서 그 슬픔을 빨리 덜어내고
아이를 놔줘야 아이의 혼령이 떠나는데
그 부부는 그러지 못해서 애기 혼령이 부모 주위를
떠돌고 있었다는...
아이도 가엾고.... 부모도 가엾던.....